Page 6 - 월간소식지 손해사정 v01
P. 6
1
물
김영현 대표님은 2000년도에 손해사정사
시험에 합격하고 손해사정법인의 대표 및
독립사정사협회의 이사로서 활동 중 입니다.
글: 김영현 사정사 바쁜 가운데에도 본회의 발전을 위해서
PNS해밀손해사정㈜ 대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김영현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개
<우리는 Family>
안녕하세요. 손해사정사 김영현입니다. 지면으로라도 존경하는 선배님과 사랑하는 후배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고요.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기쁩니다.
먼저 회사 구성원을 소개하면 경험과 능력이 풍부한 박성정·장진혁·이남숙·박성훈 사정사 님, 젊고 열정이
뛰어난 장동호·김기범 사정사 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PNS해밀은 신체 및 재물의 손해사정업무를 했던 해밀손해사정과 국내 유사관련기관 최초로 ISO 9001
인증을 취득한 교통사고 및 각종 사고의 원인분석을 통한 솔루션을 연구하는 박승범 박사님께서 운영하
고있는 PNS법과학기술연구소가 합쳐져서 PNS해밀이 만들어졌습니다.
직업 선택 동기
<손해사정은 천직>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기에 군제대 후 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중 우연히 손해사정을 하는 분을 만난 것
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반인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
을 것입니다. 2000년도 23회 시험에 운좋게 합격하고, 첫 직장이 삼성생명서비스(구 SIS)였습니다. 자격
이화재·특종분야임에도 인보험 파트가 주였습니다.
2005년도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실을 개업하였고, 힘들었던 점은 기존에는 유에서 무를, 즉모든것이
갖추어진 서류를 심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의 일을,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었죠.
더욱이 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잡학의 지식(예, 자동차, 의료, 산재, 건보, 국민연금 등)이 필요했죠.
여기까지만 해도 그나마 나았을 텐데요. 영원한 숙제인 마켓팅... 어디서 고객을 만나야 하며,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 도장을 찍게 하느냐. 산 넘어 산이었죠. 그것도 첩첩산중...
지금 생각해보면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랄까요. 과연 끝이 있을 까하는 고민을 무수히 많이 했
던 시기였죠. 99년도에 손해사정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합격만 하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죠.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요. 이 고민은 죽는 날 까지도 할 것 같네요. 다만 과거에는
불안감속에서 무턱대고 걸었다면 지금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뛰고 있다는 차이.
최근에는 의료사고에 대비해 대학원에서 의료법을 전공하였고, 10년만에 영어공부도 새로이 하면서 재충
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6
물
김영현 대표님은 2000년도에 손해사정사
시험에 합격하고 손해사정법인의 대표 및
독립사정사협회의 이사로서 활동 중 입니다.
글: 김영현 사정사 바쁜 가운데에도 본회의 발전을 위해서
PNS해밀손해사정㈜ 대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김영현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개
<우리는 Family>
안녕하세요. 손해사정사 김영현입니다. 지면으로라도 존경하는 선배님과 사랑하는 후배님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고요.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기쁩니다.
먼저 회사 구성원을 소개하면 경험과 능력이 풍부한 박성정·장진혁·이남숙·박성훈 사정사 님, 젊고 열정이
뛰어난 장동호·김기범 사정사 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PNS해밀은 신체 및 재물의 손해사정업무를 했던 해밀손해사정과 국내 유사관련기관 최초로 ISO 9001
인증을 취득한 교통사고 및 각종 사고의 원인분석을 통한 솔루션을 연구하는 박승범 박사님께서 운영하
고있는 PNS법과학기술연구소가 합쳐져서 PNS해밀이 만들어졌습니다.
직업 선택 동기
<손해사정은 천직>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기에 군제대 후 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중 우연히 손해사정을 하는 분을 만난 것
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반인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
을 것입니다. 2000년도 23회 시험에 운좋게 합격하고, 첫 직장이 삼성생명서비스(구 SIS)였습니다. 자격
이화재·특종분야임에도 인보험 파트가 주였습니다.
2005년도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실을 개업하였고, 힘들었던 점은 기존에는 유에서 무를, 즉모든것이
갖추어진 서류를 심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 반대의 일을,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었죠.
더욱이 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잡학의 지식(예, 자동차, 의료, 산재, 건보, 국민연금 등)이 필요했죠.
여기까지만 해도 그나마 나았을 텐데요. 영원한 숙제인 마켓팅... 어디서 고객을 만나야 하며,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 도장을 찍게 하느냐. 산 넘어 산이었죠. 그것도 첩첩산중...
지금 생각해보면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랄까요. 과연 끝이 있을 까하는 고민을 무수히 많이 했
던 시기였죠. 99년도에 손해사정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합격만 하면 모든게 끝날 줄 알았죠.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요. 이 고민은 죽는 날 까지도 할 것 같네요. 다만 과거에는
불안감속에서 무턱대고 걸었다면 지금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뛰고 있다는 차이.
최근에는 의료사고에 대비해 대학원에서 의료법을 전공하였고, 10년만에 영어공부도 새로이 하면서 재충
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