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월간소식지 손해사정 v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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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국내외적 법률적 구조하에 열악했던 배․보상 문제에 대하여,
손해사정사의 전문적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협회와 전국의 손해사정사 분들과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피해단체 사무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개인사무실을 이용하여 겨울 난방과 수 많은
복사등의 사무비와 전화를 사용하며, 피해주민들 대표들을 만나고, 전국에서 오는 손해사정사 분들과
법무법인 팀들을 만나고, 국제기금의 담당자들도 만나며, 손해사정사라는 입장보다 태안지역 주민의
입장에 기울어진 활동을 하였다. 각종 집회를 신고하고 기획하며, 대법원 성명서를 작성하는 증 업무는
새벽 4시부터 밤 12까지 쉴 새 없이 했고, 새벽기도를 사고일로부터 6개월 이상 다녔으며, 무거운 노트북
가방에 무거운 성경책까지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10분 뒤에 지역주민 설명회를 마치고서야 아버지 빈소를 찾았다.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지만 보람있었고,
우스갯소리로 경찰서 불랙리스트에 몇위 안에 들었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많은 스토리들을
모아 추후 10년이 지나는 즈음에 책을 한 권 낼 예정이다.
피해주민, 그리고 손해사정사인 나는 씨프린스호 사고 등 굵직한 사고와 작은 사고들까지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지나간 사고를 조사할수록 분명한 확신이 드는 게 있었다. 그것은 태안기름유출
사고는 반드시 손해사정사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고의 손해 배․보상 문제는 손해사정사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는 절대적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비수산 관광분야의 도움활동을 하던 나는 피해주민의 입장과 동시에 손해사정사라는 전문가 입장에서
냉정하게 손해사정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동시에 법률적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에 당시
국내 50위 내에 손꼽는 법무법인 팀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피해주민에게 설명회를 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절차를 밟았으며, 공개설명회를 통해 피해주민단체 위원장님들의 냉정한 선택으로 한국손해사정사회와
법무법인의 컨소시엄 단체를 선임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개인 및 손해사정법인 대표들은 3개월은 아예 숙박을 하며 상주하면서 조사와 손해사정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이후 태안사무소를 두며 8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이익을 쫒지 않았던
희생정신으로 손해사정사는 태안에서 너무나 유명한 전문가로 인식되었고, 태안군청, 충남도청, 당시
정부부처인 국토해양부, 해양수산부, 농림수산식품부, 나아가 국제기금 측 회사들에서도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 16명의 전사들은 손해사정사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국 런던의 국제기금 (IOPC FUND) 국제회의에 대한민국대표단으로 참석, 일본
후큐이현 기름유출사고 사고조사 및 견학을 기획하고 강의하였으며, KBS 방송에 패널로 나가
국민여론을 형성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피해주민대표로 또한 손해사정사로서의 활동은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있는 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하였고, 행동하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였다.
2 대형재난사고에서의 손해사정사 역할과 사회적 책임감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 사고 당시, 태안지역에서의
손해사정사분들 역할을 개인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 이면의 감동적이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했던 손해사정사들의 이야기는
삼풍백화점붕괴사고에도 있었고, 대구지하철참사사고,
성주자전거압사사고, 세월호사고, 판교 환풍기 사고에도
존재한다. 우리 선배들이 그리 하였던 것들을 다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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