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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비자는 약자다
작성일 : 2014.06.10 | 조회수 : 11789

주 명 규 (경영기획팀장,동양화재 기획관리)


청년실업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를 온 몸으로 부대끼며 졸업 후 1년이 넘도록 백수아닌 백조생활을 했던 K양은 얼마 전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생명보험사에 입사하고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기분좋게 한턱을 내고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을 한 그녀가 배치된 곳은 콜센터.
그 회사의 모든 상담전화가 몰려드는 곳이다. 입사하기 전에는 보험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며칠동안 계속된 각종 교육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된 말 한마디! ‘고객은 왕(王)이요 신(神)이다.’ 드디어 실전에 투입된 첫 날, 그러나 하늘은 어찌 그리도 무심하신지.
K양은 고객님들의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한 공세에 완전히 넋이 빠졌다. 저돌형(猪突型), 황제형(皇帝型), 읍소형(泣訴型) 등 다양한 부류의 고객님들은 그녀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 부었고 급기야 ‘쌍시옷’으로 중무장하신 특공고객님의 필살기에 의해 그녀는 완전히 K.O 당했다.
그녀는 자기가 업무를 잘 몰라서, 상담스킬이 부족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경력이 3년이 넘은 언니들도, 뒷자리에 계신 팀장님들도 모두 수화기 앞에서 백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 그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고객님’들이었다.
손해보험사에서 10년이 넘게 자동차보험 영업을 해온 베테랑 K씨는 요즘 인터넷이 너무도 얄밉다. 어제만 해도 자기에게 보험을 들겠다던 고객이 오늘 다른 회사에 보험을 들었다는 싸늘한 통보를 해 왔던 것이다.
어제 그 고객을 방문해서 자동차보험계약을 설계해 드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성실관리’와 ‘신속보상’을 약속드리자 금방이라도 계약을 할 것 같았던 그 분이 지난 밤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보시고는 모 보험사의 보험료가 더 저렴해서 그리로 들었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K씨는 고객의 입에서 ‘부부운전특약’이 어떻고, ‘자기부담금’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거의 기절할 뻔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게 되었을까? 이제 고객들은 그가 전에 알았던 고객들이 아니었다. ‘23세미만’이니, ‘할인할증’이니 이런 것을 설명할라치면 모두들 골치아프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그래서 얼마만 내면 되는 건데?” 라고 묻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K씨의 고객리스트에는 붉은 줄이 하나 둘 씩 늘어간다. 그는 생각한다. 이제 시장에는 공급자 못지 않게 많은 정보를 가지고 비교와 선택을 할 줄 아는‘현명한 소비자’만 남았다고, 그래서 자신의 영업방식도 이제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사실 보험사에 근무하는 사람들 가운데 고객에게 큰 소리 한번 안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저 보험사에 다니는 죄인이요,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고객들이 왜 이렇게 보험을 불신하고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는가는 별도로 논의할 문제다.
현실에서는 고객에게 호통받는 보험사 직원들이 당국에서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가며‘보험가입자 보호 강화’를 주장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보험시장은 이제 Seller Market에서 완전히 Buyer Market으로 바뀌지 않았는지 반문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고객은 약자다. 그들이 제아무리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법인격을 가지고 시스템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보험사를 따라갈 수 없음이요, 무엇보다도 게임의 룰을 만들거나 변화시킬 때 고객들은 다만 한쪽 어깨만이라도 끼어들 수 있는 틈새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는 약자를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보호주의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고객들 스스로도 그들의 위상을 높여 나갈 것이다. 개개의 소비자들이 현명해지는 것과 동시에 소비자간의 연합을 통해 압력의 수위를 높여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설사 고객의 힘이 막강해진다 하더라도 보험사를 능가하는 강자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를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고객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2003-11-24 보험신보 기고